이희호 여사가 별세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최근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정치적 동반자 관계였던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별세하였다고 합니다

 

앞서, 그녀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 보낸 야권의 '대모'로도 평가를 받으며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여전 문과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이후 미국 유학을

다녀오는 등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에서 강의를 하는, 당시 '엘리트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녀가 지난 (10일) 별세하였다고 합니다

 

어떠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자세한 내용에 따르면

 

김대중평화센터는

"10일 오후 11시 37분 서울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에서 소전하셨다"

라고 지난 (10일) 에 밝혔다고 합니다,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과, 삼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 임의장 등 유족들이 임종을 지킨 것으로 젼해지며, 영걸식은 오는 14일

오전 6시에 거행되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고 합니다

 

 

앞서, 이희호 여사는 최근 앓던 간암이 악화되어 3월부터

서울 연세대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왔다고 합니다, 4월 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이 별세 때도  가족과 동교동계 인사들은 이희호 여사의

병세가 악화될 것을 염려하여 별세 소식조차 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며

6일부터 의사소통이 어려워질 정도로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는 1962년 40세의 나이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영욕의 세월을 함께하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남치사건

및 사형선고, 6년에 걸친 옥바라지,망명생활 등 정치적 혹한기 역시

함께 견뎌냈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내란음모 사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대는 지키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구명을 청원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구명 운동을 주도 하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15대 대통령에 재임할 때

남북관계 개선 등을 위하여 힘을 썻으며, DJ 서거 이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써

2018년 8월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방문하는 등에 모습을 보여주며

남북 평화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고 합니다

 

 

이어 그녀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희호 여사는 국내 여성운동 1세대 활동가라고도 분류되며

1950년대 초에는 대한여자청년단,여성문제연구원 등의 창설을 주도하고

미국 유학 직후인 1950년대 말에는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 총무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를 역임하는 등 한국 여성운동계 지도자로써

성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51년 이며

둘은 학술모임 에서 만나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았고 관계를 이어가던 중

지난 1962년 이 여사가 YMCA 총무로 있던 때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5수 끝에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5,16구데타로 정치 낭인이

되었는 상태였으며, 이때부터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이어지던 시기에는

이희호 여사는 항상 남편과 함께하였으며, 결혼식을 올리고 열흘 만에

이희호 여사는 남편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으며, 지난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이후 반복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살이에 이희호 여사는

석방 운동과 옥바라지를 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이희호 여사가 유학 시절 쌓은 영어 실력과 영문 타자 솜씨를 이용하여

서구식 매너 등이 큰 자산이 되었으며,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곤경에 처할 때

마다 세계 각지의 유력인사들에게 유려하고 호소력 짙은 편지를 보내 구명운동을 펼쳤고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생활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식 이후 이희호 여사는 영부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앞장을 섰으며, 결식아동을 위한 봉사단체 '사랑의 친구들' 과

저소득층 여성을 돋는 단체인 '한국여성재단' 등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여성 가족부의

모태가 되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도 출범시켰다고 합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여성부가 신설된 후 여성의  공직 진출이 확대되었고 이에

"이희호 여사의 역할이 매우 컸다" 라는 말이 나올정도였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내가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적인 관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조언 덕분이었다 라고 여러차례 밝힌 바도 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부부는 동교통 자택에 자신들의 문패를 나란히 단 것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여사에 보이는 존경심과 애정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 이후에는 대북송금

사건 수사, 세아들의 비리 연루로 또 한 번 힘든 시기를 겪었고

2009년 8월에는 남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난 4월달에는 첫째 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을 먼저 보내며

 

 

이희호 여사는 생전 언론 인터뷰를 통하여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족므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한 길을 걸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며 한다"

 

라고 소원하였다고 합니다.

 

 

글을 마치며,

 

김홍일 전 의원에 대하여 소개 드리자면

 

김홍일 전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째 아들이며

그는 1948년 1월 21일 전남 목포시에서 출생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배재중학교,대신고등학교,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왔으며 대학교

정치외교학 석사로 졸업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후 더불어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국민의회와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15,16,17 총 3번

국회의원으로 지냈으며 더불어 그는 별세전 파킨슨 병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파킨슨병이 증세가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는 지난 1971년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으며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 공안당국으로 부터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인하여

건강에 이상이 생겨 목디스크 수술을 받는 등에 건강과

생활에 지장이 생겼고 이외에도 이 때 파킨슨병까지 얻게된

것으로 알려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파킨슨병이 재선 의원 시절에 발병되어

보행에 불편을 겪었으며 미국울 수차례 오가며 수술을

받았어야 할 정도로 건강상태에 문제가 많아 의정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故 이희호 여사에게

 

삼가고인 명복을 비는바 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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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씨가 별세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최근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일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씨가 오늘 (20일) 별세하였다는

내용입니다

 

과연 어떠한 사유가 그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을까요?

 

 

자세한 내용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7분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자택에서 김홍일 전 의원이 쓰러졌다는 신고가

접수 돼었다고 합니다

 

이후 김홍일 전 의원은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돼었으나

오후 5시 4분에 사망 판정을 받았으며 아직까지는 그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는 바라고 합니다

 

 

 

앞서 김홍일 전 의원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 김홍일

전 의원은 대신고등학교,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는 바가 있으며 그 이후

 

더불어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15,16,17대 국회의원으로 지냈으며 그와 더불어 그는

최근 파긴슨병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파킨슨병의

관한 내용을 덧붙여 설명 드리자면

 

지난 1971년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선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어

고초를 겪었으며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당시

공안당국으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에

이상이 생겨 목디스크 수술을 받는 등에 고통을

얻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파킨슨병까지 얻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홍일 전 의원은

이러한 파킨슨병이 재선 의원 시절에

발병하게 되어 보행에 불편을 겪었으며

 

2004년 17대 총선 때에는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3선에 성공하였지만 미국을

수차례 오가며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나빠져 의정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외에 김홍일 전 의원에

관하여 설명드리자면 김홍일 전 의원은

2004년 ~ 2006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을

지내면서 남북 교류 협력 분야에 기여를 하였으며 중국

옌타이대학교에서 명예 철학 박사 학위를 받는 등의

동아시아 외교에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6년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대가로 1억5천만원을 수수한 혐의가 대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돼어 의원직을 잃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글을 마치며

삼가고인의 명복을 비는바 이며

파킨슨병 등 건강악화로 인하여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에 몰라보게 수척해진 모습을 보고

장례식에 참석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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